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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4 (강녕전,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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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행이야기 > 서울 > 역사유적지 > 경복궁 (강녕전, 교태전)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 경복궁 (사적  제117호)을 만나본다.

 

 


경복궁 안내도 및 이동 동선

포스팅 순서는 이동 순서대로며,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종합하여 정리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특성상 사진의 왜곡된 부분이 있을수 있으며, 사진 관련내용은 여러 곳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침전 영역을 이룬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녕전은 왕이 독서와 휴식, 신하들과 면담을 하던 곳으로, 1918년 강녕전과 그 주위 전각들을 모두 헐어 창덕궁으로 옮겨 사라진 것을 1995년에 복원하였다.

 

 


향오문 (嚮五門 Hyangomun)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북쪽 행각 중간에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궁궐의 침전영역인 강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향오문에 딸린 좌우 행각의 중간쯤에 좌측에는 용부문, 우측에는 안지문이 하나씩 더 배치되어 있다.

 

 


향오문 현판

오복을 향한다라는 의미다.

 

 


강녕전 (康寧殿 Gangnyeongjeon)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그 중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정면 11칸의 웅장한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시선을 압도한다.

 

 


강녕전 현판

1995년에 복원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강녕전은 편안하고 건강함을 의미하며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강녕전

강녕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에 지어졌으며, 그후 임진왜란때 화재로 인해 전부 불타 버렸다. 일제강점기 때는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의 희정당을 재건하기 위해 헐리기도 했다.

 

 


강녕전

강녕전의 지붕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용마루가 없다. 동쪽에 자리잡은 연생전의 지붕에는 가로로 하얗게 용마루가 보이지만 강녕전의 지붕에는 기와가 바로 반대쪽으로 넘어가는걸 볼 수 있다. 임금의 상징이 용이기 때문에 또다른 용을 두지 않은 것이라고... 교태전도 마찬가지로 용마루가 없다.

 

 


강녕전

추웠던 날 찍은 사진이라 중앙 3칸을 제외하고는 모든 문이 닫혀있다. 문살의 문양으로 인해 더 품위있어보이는 듯 하다.

 

 


강녕전의 월대

4단의 기단을 쌓은후 전면에는 넓직한 월대를 꾸민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에 중요한 분이 살고 계신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강녕전 대청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으로 꾸몄으며, 천장의 밝은 무늬와 함께 시원하게 탁트여 보인다. 대청 중심으로 좌우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천장

 

 


서쪽 침전

 

 


내부 모습

 

 


강녕전의 동쪽 측면

동쪽에서 본 옆모습으로 측면 5칸의 넓은 공간을 이루었다. 지붕 합각의 무늬가 눈에 띄며 아래쪽에 아궁이도 보인다.

 

 


동쪽 합각

강녕전의 합각은 내전의 합각 문양중 가장 뛰어나다. 네모 틀 안에 무시무종의 무늬로 싸고 동쪽에는 강(康), 서쪽에는 녕(寧)자를 넣어 '강녕'이라는 글자를 완성했다.

 

 


서쪽 합각

 

 


용두와 잡상

추녀마루에는 용두와 그 앞으로 7개의 잡상을 세웠고, 추녀끝에는 토수를 끼워 살짝 올라가는 곡선을 마무리했다.

 

 


연생전 (延生殿 Yeonsaengjeon)

강녕전 외에 침전으로 사용되거나 신하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던 4개의 부속건물을 살펴보면...
강녕전의 우측에 세로 방향으로 위치한 연생전은 동쪽에 위치한 작은 침전이라는 뜻의 동소침으로 지어졌다. 강녕전의 서쪽에 위치한 경성전과 짝을 이루는 건물로 두건물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1865년 경복궁을 복원할 당시에는 좌측의 연길당을 거쳐 강녕전까지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단독건물로 남아있다.

 

 


연생전 현판

연생전의 이름은 봄에 어진 마음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이끈다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된 것으로 서예가 구당 여원구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합각과 함실아궁이

 

 


연생전의 용두와 잡상

 

 


경성전 (慶成殿 Gyeongseongjeon)

강녕전의 좌측에 세로 방향으로 위치하며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된 건물로 서쪽에 위치하는 작은 침전이라는 뜻의 서소침이라 지어졌다. 동쪽의 연생전과 서로 마주보며 대칭을 이루는 건물로,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당시에는 응지당을 거쳐 강녕전까지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경성전 현판

완성함을 기뻐한다는 뜻의 경성전은 천지가 만물을 낳고 이루는 것을 본받아 정령을 밝히라는 의미로 정도전이 이름지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된 것으로 서예가 우죽 양진니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경성전의 좌측면

강녕전을 향해 바라보며 서있는 경성전은 1567년 명종이 아들없이 승하하자 사직동 사가에 살던 조카 하성군(선조)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경복궁에 들어와 명종의 장례를 치르고, 즉위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연길당 (延吉堂 Yeongildang)

연길당은 강녕전 우측에 있는 부속건물로 연생전과 직각을 이루며 자리잡고 있다. 우측 앞에 보이는 건물이 연생전이다. 연길이라는 이름은 복을 맞아 들인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어졌으며 양반가의 사랑채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응지당 (膺祉堂 Eungjidang)

응지당은 강녕전에 딸린 부속건물로 강녕전 좌측에 있으며 연길당과 좌우 짝을 이루는 쌍둥이 건물이다. 단순하면서 소박한 느낌의 응지당은 침소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정무공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응지당 좌측에는 왕의 우물인 어정과 흠경각으로 통하는 일각문이 있다.

 

 


어정

어정은 임금의 전용 우물로, 강녕전의 좌측 응지당 옆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뒤로 흠경각이 보인다.

 

 


강녕전 툇마루

이 문이 열린다면 뻥뚫린 대청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 여름에는 아마도 엄청 시원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녕전 굴뚝

강녕전 굴뚝은 강녕전의 뒷편인 북측담장, 즉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양의문을 사이에 두고 좌우측으로 주황색 전돌을 쌓아올린 기둥형식으로 붙어있다. 굴뚝을 길게 빼내어 온돌의 온기를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한 지혜라고 한다.

 

 


양의문과 강녕전 굴뚝

이 굴뚝에는 추상적인 무늬에 가까운 문자도가 새겨져 있는데 우측이 '천세만세(千世萬歲)', 좌측이 '만수무강(萬壽無疆)'이라는 글씨라고 한다.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자.

 

 


강녕전 굴뚝

해설사님이 굴뚝에 대해 설명하는 중...

 

 


건의당 (建宜堂 Geoneuidang)

강녕전 남쪽 행각을 살펴보면 향오문에서 서쪽으로는 연소당과 건의당이 있고, 동쪽으로는 청심당이 있다. 건의당은 마땅함을 세운다는 뜻으로 ≪중용≫에서는 '건의'를 '어진이를 높임'으로 설명하였다.

 

 


연소당 (延昭堂 Yeonsodang)

강녕전의 남쪽 행각에 딸린 향오문 서편에 위치해 있다. 광명함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용부문 (用敷門 Yongbumun)

남쪽 행각에는 향오문 외에도 서쪽에는 용부문이, 동쪽에는 안지문이 있어 사정전과 통하게 되어있다. 용부문을 들어서면 경성전의 좌측면과 마주하게 된다. 편전영역에서 찍은 사진으로 침전영역에서는 건의당과 연소당 사이에 위치해 있다.

 

 


청심당 (淸心堂 Cheongsimdang)

남쪽행각의 향오문 동편에 있는 당의 이름으로 마음을 맑게한다는 뜻이다.

 

 


안지문 (安至門 Anjimun)

남쪽 행각의 향오문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평안함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 문 역시 사정전과 통하게 되어있으며, 왕이 향오문보다는 안지문으로 들어서면서 평안함에 이르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안지문 안으로 연생전과 연길당이 보인다.

 

 


내성문 (乃成門 Naeseongmun)

서쪽 행각에 딸린 문으로 경회루로 나갈때 이용하는 문이다. 밖에서 본 모습으로 내성문을 통해 경성전의 뒷부분이 보인다.

 

 


서쪽행각 밖의 담장

내성문 밖으로 나가면 이렇게 담장이 나오고 다시 일각문을 통해 나가면 경회루의 자시문이 나온다. 어느 건물의 것인지 모를 굴뚝이 담장에 조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동쪽행각에는 수경당과 계광당, 흥안당이 있으며 동궁과 소주방 권역으로 갈 수 있는 지도문이 있으나 사진을 미처 찍어오지 못해 강녕전 편은 이것으로 마친다.

 

 

 

침전 영역중 안채에 해당하는 교태전은 왕비가 거처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1918년에 강녕전과 함께 교태전을 뜯어 창덕궁으로 옮겨져 사라진 것을 1995년에 복원하였다.

 

 


양의문 (兩儀門 Yangeuimun)

강녕전 북쪽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으로 갈 수 있다. 교태전의 남쪽 행각의 문이며, 삼문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양의문에 딸린 행각 서쪽에는 보의당이, 동쪽에는 승순당이 있다.

 

 


양의문의 현판

양의문이라는 이름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양(兩)자는 속체로 쓴 까닭에 중앙의 세로 획이 생략되어 있다.

 

 


양의문에서 본 교태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쳤다. 1917년 11월 창덕궁의 큰 화재로 인해 대조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소실되자 이를 복구하기 위해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헐어서 재목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교태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교태전 (交泰殿 Gyotaejeon)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은 중궁전 또는 중전으로도 불렸다. 전면 9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강녕전과는 다르게 전면에 월대가 없고 바로 다섯층의 계단이 놓여있다. 지붕에는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용마루를 두지 않았다.

 

 


교태전 현판과 단청

단청만 보아도 궁궐안에 있는 다른 건물들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판은 조석원의 글씨로 1994년에 사진으로 남아 있는 글자를 복원하여 새겼다.

 

 


교태전

교태전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태전의 이름은 주역의 '천지교태'에서 따왔는데, '남녀간의 교감'이 아닌 천하만물의 상호교감을 나타내며, 군신간의 교감으로 해석되고 있다.

 

 


교태전

문이 닫혀있는 모습

 

 


교태전 마루

전면 9칸중 가운데 3칸은 마루처럼 빈 공간이지만 왕비의 침전인만큼 벽면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들의 방은 일단 예쁘게 꾸미고 봐야할 일인가보다.

 

 


교태전 벽면

 

 


교태전의 좌측 내부

 

 


용두와 잡상

 

 


교태전

규모면에서는 강녕전보다 작지만 교태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함홍각이, 우측에는 원길헌이 연결되어 있어 시각적으로는 훨씬 더 커보이는 느낌이다. 거기다 동북쪽으로는 '┌'자 모양으로 구성된 건순각이 잇닿아 있다. 행랑들은 방과 큰 마루,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홍각 (含弘閣 Hamhonggak)

포용하고 너그럽다는 의미의 함홍각은 교태전의 좌측에 연결되어 있는 건물로, 교태전을 다시 만들때 함께 지어진 것이다.

 

 


함홍각 현판

 

 


연결부분의 마루

교태전에서 본 모습으로 함홍각 앞으로 마루가 연결되어 있어 통로 역할을 해준다.

 

 


원길헌 (元吉軒 Wongilheon)

크게 선하여 길하다라는 의미의 원길헌은 교태전의 우측에 연결되어 있는 건물로 이곳에서는 약원들이 진료를 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원길헌 현판

 

 


원길헌에서 본 모습

원길헌에서 교태전으로도 마루가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런 이동이 가능했다.

 

 


교태전 일곽

왕비의 침전이라 그런지 궁내 전각들 중에 아름답기로 단연 손꼽히는 것 같다. 교태전의 전체 풍경을 보면 교태전에서 양쪽으로 길게 뻗어 서쪽과 동쪽의 행각과 연결되고 다시 남쪽 행각의 양의문에서 만나게 된다. 어떤 것 하나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게 없다.

 

 


내순당 (乃順堂 Naesundang)

서쪽 행각에 있는 내순당은 동쪽 행각의 체인당과 짝을 이루는 당으로 내순의 이름은 승천하여 하늘을 받든다라는 의미이다. 그 옆으로 재성문이 있다.

 

 


재성문 (財成門 Jaeseongmun)

내순당 우측에 딸린 재성문은 불상을 모셔두고 불교의식을 행하던 함원전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문이다. 여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인만큼 왕비의 편의를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함원전 영역에서 본 모습으로 재성문을 통해 교태전 동행각의 체인당과 만통문이 보인다.

 

 


만통문 (萬通門 Mantongmun)

교태전 동쪽 행각에 있는 문으로 만물이 형통하여 태평함을 의미한다.

 

 


교태전과 건순각

함홍각을 뒤로 돌아가면 교태전과 연결되어 있는 건순각을 볼 수 있다. 건순각 아래로는 허리를 굽혀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있으며, 아미산이 있는 후원이 나온다.

 

 


건순각 (健順閣 Geonsungak)

건순각은 교태전과 직각을 이루며 연결되어 후원으로 길게 나와 있는 건물이다. 이곳에 서서 아름다운 아미산을 바라보며 사가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훔치며 그리움을 달래는 중전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건순각과 아미산

건순각은 왕비의 출산을 위한 산실청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름답고 고요한 이곳이 산실로 쓰이기에는 더없이 좋은곳인 듯 하다. 안쪽 굴뚝 옆에 있는 문은 건순문으로 자경전이나 향원정으로 갈 수 있다. 아미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기로 한다.

 

 


툇마루

 

 


건순각

'건순'이라는 이름은 건건곤순(乾健坤順)의 줄임말로, 하늘은 굳세고 땅은 유순하다는 뜻이다.

 

 

 


건순각과 담장

 

 


연휘문 (延輝門 Yeonhuimun)

교태전 동쪽 담장의 북쪽끝에 있는 월문으로 건순각 뒷편에 있다. 밝은 빛을 맞이한다는 뜻의 연휘문은 다른문과는 틀리게 하단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그 위에 전돌을 쌓아올렸으며 꼭대기에는 기와을 얹었다.

 

 


연휘문과 담장

전돌 가운데에는 연휘문이라는 이름이 박혀있고 양쪽 옆으로는 학을 넣었다. 반대쪽에는 이름대신 귀면문양을 넣었다.

 

 


교태전 담장

건순문과 연휘문을 연결하는 'ㄱ'자 담장의 안쪽 벽면에 있는 꽃문양이다.

 

 


담장의 꽃문양

평면보다 도드라지게 새긴 양각 형태로 각종 꽃문양과 나비를 넣어 단조로울수 있는 담장을 아름답게 꾸몄다.

 

 


담장의 꽃문양

제일 안쪽에 피어난 한송이 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누구일까...? 중전에게 품은 연심을 꽃 한송이로 표현한 이 사람은...

 

 


담장

원길헌과 건순각의 뒷마당에서 본 동쪽담장으로, 연휘문의 오른쪽에 이어지는 담장의 문양이다.

 

 


담장과 굴뚝

담장의 문양이 굴뚝을 쌓아올린 전돌의 무늬와 잘 어울린다. 이름모를 이 일각문으로 나가면 자경전이 나온다.

 

 


교태전 일원

자경전 쪽에서 바라본 교태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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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Bay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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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5 (아미산, 함원전, 흠경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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